“내가 봐도 잘 찍었고 만족스러운 좋은 영화를 찍고 죽고 싶어요”
예능PD에서 영화감독까지...매순간 성장하는 예술가

[CEO저널=최재혁 기자]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어김없이 좋은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관객의 시선을 끄는 작품부터, 관계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까지. 기자도 벌써 영화제 참석이 수차례라 그런지, 영화를 보는 눈이 절로 커지는 중이다. 그중 ‘한국경쟁부문’ 중 ‘우.천.사(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라는 작품이 유독 눈에 띄었다.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해당 작품은, 사랑스러운 배우들의 애틋한 모습과 폭력으로 덧씌워졌던 학원가를 강타했다. 이 작품을 연출한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이 질문에서 인터뷰는 시작됐다.

Q.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A. 저희 할아버지가 초등학생인 저를 데리고 매일 비디오 가게에 데려가셨어요. 비디오 하나 빌리고, 만화방 가서 만화책 빌리고 집에 오는 게 일상이었죠.

자연스럽게 영화를 많이 접했지만, 영화감독이 될 생각은 못 하고 있었어요. 저는 생명공학과를 나왔고, 제 주변에도 이과가 대부분이거든요.

영화를 보면서도 그동안 ‘타고난 사람’이 하는 게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영화감독에 대한 꿈은 저도 모르게 서서히 발아하고 있었죠. 수능 끝나고 싸이월드에 영화 ‘아멜리아’ 스틸 사진을 올리면서 “다시 태어나면 영화감독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써놨더라고요.(웃음)

말은 이렇게 했지만, 영화감독이 되지 않기 위해 ‘발악’했어요. 20대 초반에도 계속 ‘다시 태어나면 영화감독을 하고 싶다’고 여겼지만, 저는 현실이 무척 중요한 사람이라 영화감독으로서 못 살겠더라고요.

지금은 처우가 나아졌겠지만, 영화감독님들 인터뷰 보면 1년에 300만 원 벌었다고 하잖아요. 매우 두려웠죠.

생명공학과를 나왔으니 의사가 돼서 취미로 영화를 찍자는 생각을 했죠. 의전 준비도 했었고요. 실제로 하루에 15시간씩 공부를 했더니, 10년을 못 넘기겠더라고요.

영화감독과 의사 사이에 뭔가를 고민했어요. 스스로 타협한 결과 ‘방송 PD’라는 결론이 나왔죠. 그렇게 예능 PD를 2년 정도 했어요.

외주 제작사에서 정말 유명한 프로그램을 계획했어요. 이름만 들어도 여러분이 당장 고개를 끄덕일만한 프로그램이죠.(웃음) 프로그램을 보면서 뿌듯할 때가 많았죠. 그런데 막상 상은 다른 사람이 받는 거예요.

또, 개인적으로 예능은 작가님들의 파워가 상당히 강해요. PD로서 제가 생각한 거를 구현하고 싶지만, 막힐 때가 꽤 있었죠.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느낌이었어요.

그때 국장님이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는데, 근엄한 표정의 국장님이 “한제이 씨는 왜 PD가 되고 싶나?”라고 물으시더라고요.

살짝 고민했지만, 단언했죠. “저는 사실 영화감독을 하고 싶은데, 그쪽은 돈을 못 버니까 일단 PD부터 시작했어요”라고요. 상당히 당돌하죠?

그런데 얼떨떨한 답변이 돌아왔어요. “나도 영화감독이 꿈이었네.” 국장님은 50대셨거든요? 국장이라는 위치가 엄청 높은 곳인데 꿈만 꾸는 상황인 거잖아요. 저도 여기에만 있다가는 50대까지 꿈만 꾸겠다 싶었죠. 당장 아무것도 없을 때 나오고 싶었어요.

Q.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어떻게 보면 서른이라는 주저될 수 있는 나이에 새 출발을 한 건데, 실행력이 상당한 것 같아요.

A. 제가 실행력이 꽤 좋은 편이에요.(웃음) PD를 하게 된 것도 대학 졸업할 때 ‘키파(KIPA) 디렉터 스쿨’이라는 공고를 보고 지원한 거거든요. 국가에서 돈을 다 대주고 1년 동안 교육 시켜주고 취업도 진행해준다길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죠.

제가 대전 사람이거든요? 시험을 보고 나서 일단 서울에 집을 구했어요. 저는 지원만 하면 다 붙는 줄 알았거든요.

알고 보니 5 대 1의 경쟁률이 있었더라고요. 정말 다행이죠.(웃음) 돌이켜보니 정말 대책 없네요. 그런데 붙을 것 같았어요. 생각하면 될 때까지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이후엔 영화에 대해 일단 배우고 싶었어요. 당장 대학원을 찾았고, 그렇게 들어간 곳이 ‘단국대학교 영화 콘텐츠 전문대학원’이었어요. 여기서 시나리오 전공으로 열심히 공부했죠.

Q.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하신 ‘우.천.사(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까지, 탄탄한 필모를 쌓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어떤 마음인가요?

A. 돌이켜보니 별별 생각이 드네요.(웃음) 우선 키파 디렉터 스쿨에서 PD 과정을 할 때, 함께한 동료가 ‘초단편 영화제’라는 게 있다고 시나리오 쓴 거를 줘보래요.

일단 줬죠. 읽어보더니 “너무 어둡다. 좀 밝게 써봐”라고 해서 열심히 고쳤죠. 다시 줬더니 “이거 재밌다. 찍자”라고 확신하더라고요.

영화는 1회차면 끝날 것 같고, 배우님들 밥값 드리고, 추가로 5만 원 정도면 충분히 찍겠더라고요. 그렇게 찍었는데, 초단편 영화제에서 상영이 됐어요.

어느 날 자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 거예요. 비몽사몽 한 채로 스마트폰을 들었는데 “한제이 감독님 되시죠?”라는 거예요. 순간 뭔 말인가 싶어서 “아닌데요”하고 끊었어요. 다시 전화가 와서 “한제이 감독님 아니세요?”라는데, 아차 싶었죠.

처음으로, 그것도 영화제에 제 영화가 실린 거예요. 100명 정도 들어올 수 있는 작은 관에서 영화제를 하는데 모든 게 다 신기한 거 있죠?

제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막 웃고, 고민하는데 너무 행복한 거예요. 끝나자마자 다시 그 감정을 느끼고 싶었어요.

당시 출품했던 초단편 영화는 ‘달콤한 선물’이라고, 사실 영화가 아니에요. 무성이고, 지하철 영화제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재밌는 건 당시 제 옆에 ‘구교환 감독’이 앉아 있었어요.

이후 대학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영화감독의 길을 걸었죠. 제가 직접 방학 때 돈 벌어서라도 찍자는 생각이었죠.

당시 영화 ‘만추’의 김태용 감독님이 지도 교수님이셨는데, 제가 시나리오 전공이더라도 단편을 찍어서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학생과 교수들에게 제 작품이 선보여지는데, 엄청난 혹평을 받았죠.  

여기서 물러설 수 없죠. 굴하지 않고 또다시 찍었어요. 그때는 칭찬을 받았어요. 그 영화가 ‘말할 수 없어’라는 단편 영화고, 김태용 감독님도 이 영화를 보시고 시나리오를 써도 되겠다고 하신 거예요. 신나서 끊임없이 집필했죠.

하지만 제 방대한 꿈과 달리 대부분 거절당하고, 졸업까지 한 달 남은 시점에 쓴 장편이 선택됐죠. 제작 지원도 받고, 주변에서 평가도 좋았어요. 그 작품이 바로 ‘담쟁이’였습니다.

담쟁이 찍기 전에는 영화계에 더 몸을 담고 싶어서 연출팀, 제작팀을 가리지 않고 현장에서 뛰었습니다.

Q. 시나리오를 작성할 때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나요?

A. 아이디어는 여기저기서 어떻게든 다 얻으려고 해요. 카페에서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도 있고, 친구들과 대화하다 툭 튀어나오기도 하죠. 사진전에서 특별한 영감을 얻을 때도 있고요.

담쟁이의 경우는 어느 날 꿨던 꿈에서 ‘아이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장면’의 꿈을 꿨는데, 깨고 나서도 인상이 판에 박힌 듯 남더라고요. 

거기에 예전 미국 드라마에서 나온 장면인데, 동성 커플이 응급실에 갔는데 서로 보호자로 인정을 못 받아 밖에 서성거리던 장면이 결합해서 썼어요.

더군다나 대학원 수업 내내 기본적인 과정 하에 시나리오를 작성했는데, 담쟁이는 이상하게 시나리오부터 나왔어요. 

처음, 중간, 끝 장면만 있고 인물이 따라가게 되는 시나리오였죠. 저도 처음 경험했어요. 이 느낌은 저뿐만이 아니라, 영화평 중에도 “다음이 예측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그런 인물들 때문인 것 같아요.

만약에 구조를 짜고 시나리오를 작성했으면 왠지 되게 속상했을 것 같아요.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느낌이라 너무 좋았어요.(웃음)

Q. 우.천.사를 촬영하게 된 이유도 궁금해요.

A. 제가 담쟁이로 전주국제영화제에 왔을 때 ‘우.천.사’의 원작 작가님이 제 인터뷰 기사를 보시고 미팅 요청을 하셨어요. 

제게 연출을 부탁하셨는데, 작품을 처음 봤을 때는 지금보다 어둡고 사랑 이야기가 거의 없었어요. 게다가 퀴어 영화를 연속으로 한다는 게 조금 부담스러워서 해야 하나 고민됐죠.

게다가 폭력에 대한 얘기고, 조금 딥하고, 내가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책임감도 필요했어요. 왜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 있냐는 고민을 할 때쯤 뉴스에 ‘체육계 성폭행’ 소식이 가득한 거예요.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요즘 세상에 필요한 얘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대중이 많이 봤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원작 작가님한테 “저는 사랑 이야기로 조금 더 산뜻하게 풀고 싶어요”라고 여쭈니, 쿨하게 “OK”를 해주셨죠.

Q. ‘우.천.사’를 연출할 때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A. 막상 마음먹고 각색을 시작하니 영화를 찍고 있을 저와 스태프들의 모습이 그려지더라고요. 더욱이 수위 조절도 하게 됐고요.

일단 배우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했어요. 무술팀하고 사전에 수많은 연습 과정을 거쳤고, 리허설도 현장에서 했죠. 보호대도 차고 안전에 최선을 다했어요. 다행히 큰 문제 없이 촬영을 마쳤죠.

주안점과 별개로 촬영 당시 기억 남는 몇몇 포인트가 있는데요. 태권도 대회, 태권도장 라커룸, 태권도장 앞의 씬을 모두 하루에 찍었거든요.

모두 녹초가 됐죠. 지금 돌이켜봐도 2회 차로 나눠 찍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하고요. 다들 너무 힘들어해서 박카스 5병씩 마시면서 하고 그랬어요.(웃음)

Q. ‘우.천.사’를 촬영하며 애로사항도 있었을 것 같아요.

A. 늘 애로사항이죠.(웃음) 스태프 구하는 것부터 아주 힘들고, 퀴어 영화는 캐스팅부터 벽에 막히죠.

소속사에 소속된 배우들이라면 마땅히 응낙하기가 쉽지 않죠. 특히, 20~30대 여배우들은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워요.

또, 자본도 많이 부족하고요. 촬영마다 어떤 사건이 터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죠. 차가 도랑에 빠져서 꺼내는 것에도 돈이 들고요. 참 야속하죠?(웃음)

촬영 시간이 부족한 것까지 포함해서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그러나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촬영 현장이다 보니, 각자의 고충을 해결해주는 게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웃음)

Q. 관객들이 ‘우.천.사’를 보고 어떻게 느꼈으면 좋겠나요?

A. 아무래도 영화가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니 다양한 말이 나올 수 있겠지만, 사실 우리 배우들이 너무 귀엽잖아요. 우리 귀여운 배우들을 보러 와주셨으면 하는 감정이 제일 큰 것 같아요.

배우들의 매력을 잘 담으려고 노력한 작품이라서 이쁘게 잘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Q. 다음 작품은 어떤 영화로 구상 중입니까? 

A. 지금 회사랑 계약해서 쓰고 있는 게 있는데, 만들어진다면 가족 코미디 영화일 것 같아요. 엄마와 딸 이야기고, 엄마가 납치돼서 딸이 구하러 가는 소동극 이야기입니다.

저 스스로가 준비하는 작품은 5개가량 있고요. 뭐가 먼저일지 모르겠지만, 스릴러도 해보고 싶고, 범죄 오락 액션도 구미가 당깁니다. 

여러 장르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네요.(웃음)

Q. 내일(4월 30일) 처음으로 관객과 마주합니다. 어떤 기분일 것 같으세요?

A. 제가 3년 전에 전주에 왔었는데, 그때는 코로나19 때문에 무 관객 영화제로 치러졌어요. 

이렇게 많은 관객을 마주하는 영화제는 처음이라 많이 떨리고요. 일반 관객과 동료들, 배우님들 다 같이 보는 자리라서 더더욱 떨리는 것 같아요.

원래 가족들 앞에서 재롱 잔치할 때가 가장 떨리잖아요. 그런 느낌이네요.(웃음)

Q. 영화감독으로서 좌우명 혹은 신념이 있다면요?

A. 영화 시작할 때 신념을 몸에 새겨놨거든요. ‘사랑하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 ‘그렇게 될 일은 그렇게 되게 되어 있다’ 등 되게 다양해요.

지금은 신념이랄 거는 없고 항상 영화 찍을 때마다 ‘지금 찍는 게 유작일지 모른다’는 생각이에요. 찍고 나면 막상 아쉬우니까 한 작품 더 하자는 마음이고요.

항상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계속 수정해 나가면서, 다음 작품 찍을 때마다 나아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임해요. 내가 이전보다 하나라도 더 나아졌다면 그걸로 된 거죠.

또, 내가 봐도 잘 찍었고 만족스러운 좋은 영화를 찍고 죽고 싶어요. 저희 영화 제작사 이름도 ‘다이노’거든요. ‘Die No’라는 뜻으로, 만족스러운 영화를 찍기 전까지 죽지 말자는 생각으로 지었죠.(웃음)

Q. 마지막으로 전주영화제를 찾아와준 관객과 씨네필에게 한마디 한다면요?

A. 저희 영화를 보러 와주신 것도 너무 감사하지만, 영화제 자체를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어릴 때 영화제를 즐겨보지 못했거든요. 여러분이 부럽기도 하고, 순수하게 즐기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추가로 ‘우.천.사’ 개봉 계획이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 올 하반기 아니면 내년 상반기 중에 여러분을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여나 전주에서 못 봐서 아쉽거나,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분들은 개봉 소식이 들릴 때 꼭 찾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그때까지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사진=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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